전산쟁이 구보씨의 영화구경 - 공각기동대


구보씨도 한번쯤은 "기억" 이라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 있다. 만약에 구보씨의 기억이 조작된 것이라면? 사람에 있어서, 영혼과 육체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관계인 것이라면, 사람이라는 것이 현재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객체에서 생성되는 일체의 패키지 제품이고, 현재 기술로는 그 패키지를 구분하여 판매(?)할 수 없지만, 언젠가 그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구분되어 판매(?)될 수 있다면?

본래 정신은 정보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정신을 육체안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뇌와 정신은 마치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한다. 하드웨어는 다 똑같이 생겼지만 어떤 소프트웨어를 셋업하느냐에 따라 개별적인 컴퓨터의 존재가 구별된다. 이 처럼 정신을 육체에 깔린 일종의 소프트웨어로 간주한다면 정신은 다른 하드웨어 즉 새로운 육체안에서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기억과 정신을 디스크 드라이브에 저장해 두었다가 COPY 명령이나 Install 명령으로 새로운 육체에 뇌의 기억을 주입시킬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쓰잘데기 없는 주장을... 누가 그래요?

이런 주장의 기원은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에도 이러한 주장을 하는 철학자들이 있었지만,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제의 이원론을 강하게 주장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기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물질계와, 이런 세상에서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는 존재인 정신은 별개의 존재라고 믿었다.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아마도 정신은 "기계적인 육체에 깃들인 유령" 이었던 것 같다.

미국 모 대학의 화이트 박사는, 아주 엽기적인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동물의 머리를 이식(?)하는 실험이었는데, 살아있는 원숭이를 마취한 후, 머리를 완전히 잘라내고 잘라낸 동안 피를 공급하여 뇌사 하지 않도록 유지한 다음, 머리를 다른 머리없는 원숭이에 이식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몸이 머리를 이식받았다고 하여야 할지, 머리가 몸을 이식받았다고 하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6시간 뒤 원숭이는 의식을 회복했고, 이식전의 머리 원숭이가 하던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을 그대로 나타냈다. 화이트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고 한다.

"육체에 영혼이 깃들었니 마니 하는 것은 모두 헛소리다. 당신이 평생동안 이루고 달성한 그 모든것, 당신의 기억과 고뇌와 행복은 모두 어깨위의 4.5kg짜리 데이터 저장소에 들어있다"

섬뜩한 이야기네요

시노 마사무네 원작,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 기동대>는 여기서 출발한다. 데카르트의 생각 "기계적인 육체에 깃들인 유령(Ghost in the Shell)"이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인것처럼. 현재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정보기술과 나노 테크놀러지의 발전으로 인간의 능력은 신의 영역에 까지 곧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정보기술을 이끄는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중의 한 사람인 썬 마이크로 시스템스의 빌 조이는 발달하는 나노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이러한 숙제를 낸 적이 있다고 한다. "나노 테크놀러지를 이용하여 흡혈귀를 창조해 보세요". "흡혈귀를 막을 수 있는 방안까지 고려한다면 보너스 점수가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생각이 옳다면? 데카르트의 철학이 진실이고, 만약의 인간의 정보통신 기술이 그 "정보"로 이루어진 정신을 조작할 수 있는 때가 온다면? 영화 <공각기동대>는 데카르트의 철학이 진실이라고 믿는데서 시작한다. 또한, 인간의 정보통신 기술과 나노 테크놀러지로 인하여 인간의 영혼(Ghost)라는 것이 육체를 이동하며 다닐 수 있는 것이라고 미는데서 시작한다. 영화 <매트릭스>도 약간의 상이점이 있을뿐 거기서 출발한다.

영화 <공각기동대>에서, 쓰레기 수거원인 위의 남자는 아내와 자기가 별거중이라고 믿고 있다. 아내는 자신의 부정을 탓하지만, 자신은 아내의 부정을 굳게 믿고 있다. 고민하던 남자는 어느날 찾은 술집에서 친절한 프로그래머를 만나고, 프로그래머는 아내의 두뇌를 해킹하여 아내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물론 남자는 아내의 두뇌를 해킹하여 아내의 부정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 한다. 남자는 술집에 갔다가 어떤 "친절한" 프로그래머를 만났고 (물론 이놈은 전혀 친절하지도 않고 인상도 무섭게 생겼다. 일반 UZI 총에다가 대 기갑탄을 넣어 발사하는 섬찟한 놈이다)

남자의 기억에는 분명이 아내가 자리잡고 있다. 또한, 남자의 기억에는 그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 있고, 남자는 그 딸을 지극히 사랑한다. 아래의 장면에서, 남자는 동료에게 자신의 아내와 딸의 사진을 보여 준다. (동료는 그 사진을 보지 않는다.)

곧, 남자는 공안 9과의 추적을 받게 되고, 체포당한다. 데카르트의 가설이 진실인 세계라면, 인간 두뇌에 대한 해킹은 당연히 불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각기동대>에서 남자가 체포당한 이유는 단순히 아내의 두뇌를 불법으로 해킹하려 했다는 이유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남자는 아내와 딸을 가진적이 없다.

남자는 누군가에게 두뇌를 해킹당했고, 해킹의 결과로 생겨난 기억(강제로 두뇌에 Push 되었거나 어떤 정보와 교체된)으로 아내와 딸이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남자의 기억은 조작된 것이고, 그 아내와 딸의 기억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자가 아내의 두뇌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데이터는 전혀 엉뚱한 데이터였고, 남자의 조작된 영혼은 그러한 조작된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정보"에 지나지 않는 정신은, 조작된 기억을 사실로 믿게 되었다. 폰 노이만식 아키텍처를 가진 현재의 모든 시스템은 메모리 또는 디스크에 존재하는 정보가 조작된 것인지 원래의 것인지(유효한 것인지)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공각기동대>의 이론이 <매트릭스>의 모티브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체포당하여 공안 9과에 끌려온 남자는 자신이 동료에게 보여주었던 그 사진을 보게된다. 하지만 사진에는 자신만이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는 10년 간 살았던 자신의 현재 거처를 아내와 별거하기 위하여 얻은 집이라고 믿고 있었고, 자신만 덩그러니 있는 사진을 보고 아내와 딸이 거기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믿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남자에게 그 기억은 사실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구보씨가 믿어 의심치 않는 구보씨의 모든 기억은 어떻게 된 것인가? 혹시 내가 가진 모든 기억이 조작된 것이라면? 내 모든 영혼이 정말 "정보"로서의 가치밖에 없고, 현재 내 가족, 직장, 직업, 그리고 아름다웠다고 생각되는 모든 기억들이 어제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영화 <매트릭스>는 여기서 한술 더 뜬다. 영화 <공각기동대>에서는 어떤 기억의 단편이 조작된 것임을 알 수 있고 가치 없는 기억임을 알 수 있지만,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모든 기억들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공각기동대>의 기억은 어느 한 부분은 유효하지만, <매트릭스>에서의 기억은 100% 존재 가치가 없는 조작된 기억들이기 때문이다.

구보씨도 물론(!)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또한, 평생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도 있다. 구보씨는 섬찟한 영화 <공각기동대>를 보면서, 영혼이 정말 <정보>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구보씨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 황폐하다. 하는 일도 그렇고, 그놈의 사랑이라는 것도 그렇고, 하기 싫은 일이 너무 많다. 누군가 구보씨의 기억을 조작해서 "지금 하는 일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사랑은 세상에서 제일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이러한 기억들로 바꾸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럼 그 기억이 조작된 것이든 아니든 원래의 내 생각이든 누군가가 강제로 입력한 생각이든 신경쓰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다만, 그 기억이 누군가 강제로 쓴 데이터라는 사실만 알려주지 않는다면.

구보씨가 매트릭스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모피어스이기 보다는 사이퍼가 되었을 것 같다.

그리고, <공각기동대>. 영화가 이렇게 까지 심각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심각한 영화라면 무서워서 영화 한편 제대로 보겠냐는 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