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쟁이 구보씨의 영화구경 - 굿 윌 헌팅


구보씨도 어릴적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구보씨는 천재라는게 별건가고 생각했다. 천재가 나오는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서 모짜르트라는 천재에게 감탄을 해본 적도 있지만, 구보씨는 그건 어디까지나 모짜르트가 시대를 잘 타고 났고, 자신에게 부여된 재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시대적 인 배경을 타고 태어났기 때문이지, 누구나 그런 재능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구보씨 역시 그런 재능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구보씨도 초등학교시절에는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고, 4살 때 구구단과 한글을 마스터하고, 초등학교때 신문을 척척읽고 팝송을 따라 부르던, 그런 출중한 인물이어서 주위 어른들과 선생님들을 경탄에 마지않을 수 없게 했던 경력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뒤 이어 중학교때 실시했던 IQ테스트에서는 무려 145라는 지수를 받아서, 학교에서 가장 높은 IQ를 가진 학생이라는 영예 까지 안았던 것이다. 그래서 구보씨는 누구든지 '난 천재야'라는 소리를 들으면 속으로 비웃는 그런 나쁜 습성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구보씨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뚝뚝뚝 떨어지는 성적을 보고, 구보씨는 천재라는 말들이 자취를 싹 감추고 구보씨도 아무말 못하게 되었지만, 구보씨는 여전히 자신이 천재성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별로 좋지 않은 대학을 들어갔고, 결국 졸업하여 조선쟁이가 되었을 때, 구보씨는 정말 내가 천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럴수가. 치국을 평천하해야 할 내가 쇠쟁이라니. 구보씨는 매일 커다란 컴퓨터 앞에앉아 선이나 그리면서 엄청나게 많은 숫자를 써넣고 있는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러웠다.

이게 교내 IQ수위를 자랑했던 내 모습이란 말인가. 구보씨는 포기하려 했다.

그러나 구보씨는 이내 자신이 천재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된다. 그건 구보씨가 조선쟁이를 그만두고 전산쟁이로 인생의 방향을 수정하면서 이다. 구보씨는 컴 맹이던 시절에서 컴맹을 탈출하는데 불과 1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오호, 이거 잼있네. 구보씨는 컴퓨터를 배우는데 그닥 많은 노력과 신경을 쓰지 않았음에 도 불구하고, 구보씨는 일반적으로 부르는 '컴도'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그냥 재미있네. 아하 이거 신기하네. 그러다 보니 구보씨는 컴퓨터의 내부정도 는 빠삭하게 알게 되었고, 눈 감고도 조립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고, 전산을 전공한 친구가 못하던 C언어의 소스를 간단하게 풀이해내고, 그걸 참고로 프로 그램을 만들어내고,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어 재미삼아 뿌리고, 더더욱이 책 몇번 안보고 자격증을 손에 쥐었을때에는, 소싯적에 생각했던 '난 천재'라는 생각이 다시 머리를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누군가 구보씨에게 구보씨는 몇 개의 언어를 할 줄 알아요? 하고 물었을 때 구보씨는 자신있게 '7가지'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한국어, 영어, C언어, 코볼언어, 비주얼 베이직, 어셈블리, html.

그래 난 정말 천재일지도 몰라.
자신이 천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구보씨가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를 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이건 어쩌면 내 이야기 일수도 있어. 아니 바로 내 이야기야. 굿 윌 헌팅이라는건 사람이름이고, 그 천재역으로 나오는 맷 데이먼이 그 친구역으로 나오는 벤 에플릭과 같이 시나리오를 썼다는데, 두 천재친구가 천재의 이야기를 천재적으로 써 서 아카데미 각본상까지 얻어냈으니 천재일지도 모르는 구보씨가 도저히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MIT공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구보씨는 흐뭇해한다. 그래 그렇지. 천재들만이 다닌다는 MIT공대의 모습으로 천재들이 쓴 천재의 이야기가 시작한 다니. 바로 이거야. 구보씨는 감탄하며 영화를 본다. 윌 헌팅이라는 천재가 있었는 데, 그는 고아다. 가족이없는 청년이다. 어릴 때 의붓 아버지로부터 학대당한 경력이 있고, 낮에는 MIT대학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밤에는 범상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싸움질이나 하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청년이다. 그런데 MIT대학에는 어려운 문제를 공개적으로 내고는, 그걸 풀어낸 학생에게 상을 주는 제도가 있는 모양인데, 역시 램보라는 교수가 문제를 내고는, 누군가 풀었다는걸 안다. 그 문제를 푼 청년이 바로 윌 헌팅이라는 청소부 천재 청년이다.

그 천재청년은 다혈질이어서, 싸움을 하고는 감옥으로 가게 될 직전, 그 문제를 푼 사람이 윌이라는건 알아내고 보석으로 그 청년을 풀어준다. 재판을 할 때도 윌은 예의 그 천재성을 동원해서 자신의 자유를 자신이 지킬 권리에 관한 헌법 조례들과 판 례들을 줄줄줄 꿰면서, 판사와 검사들을 당황시키고, 또 자신을 심리치료하러온 정신과 전문의들을 말빨로 박살내어 버리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기 시작한다.

오호, 저거 죽이네. 바로 내 이야기야.

구보씨는 감탄하기 시작한다. 구보씨 역시 무언가를 한번 읽으면 잘 잃어버리지 않는 체질을 가지고 있다. 구보씨 역시 오만 자질구레한 것들을 잘 기억한다. 한 가지 구보씨가 윌과 다른 점이라면, 구보씨는 윌같이 기억력이 탁월하지 못해서,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구보씨의 가설을 동원해서 밀어붙이고 마는데, 윌이라는 친구는 토씨하나 그 문구가 쓰여있는 책의 페이지 까지 다 기억한다는 것이 다르다.

뭘. 저건 영환데. 영화속의 천재와 현실의 천재는 저런 차이는 있는 법이라구.

구보씨는 영화를 계속본다.

윌을 치료하던 정신과 전문의들이 계속 손을 들고 일어나버리자, 램보 교수는 그의 친구 숀 맥과이어 교수에게 윌의 치료를 의뢰한다. 윌은 여자친구를 만나 지만 누가 자신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여자친구를 떠나 보내게 되고, 사랑하던 부인을 잃어 혼자 살아가던 숀과 윌은 어떤 묘한 동질감을 느끼면서 친구사이가 되고, 윌은 친구 처키의 충고에 말미암아 자기만의 세계를 접고 떠난 여자친구를 찾아 떠난다는 해피엔딩의 이야기 였다.

구보씨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자신의 선택에 만족을 했다.

음. 좋은 영화인 것 같군. 좋은 영화임에 틀림이 없어.

영화를 혼자서 본 구보씨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할 사람도 없어 그냥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구보씨는 어딘가 속이 허전하다. 하얏트 호텔 뷔페 로 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안먹은 느낌이랄까 아니면 삼겹살을 먹는데 파조래기 없이 먹은 느낌이랄까. 구보씨는 잔잔한 드라마라는데는 동의를 한다. 그런데 어딘가 찝찝하다. 천재일지 모르는 구보씨와 진짜 천재 윌의 넘을 수 없는 벽때 문인가? 구보씨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구보씨는 그냥 그만 생각하기로 한다. 머리 아프다.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구보씨는 그냥 거기서 그만 생각하기 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쯤이 지났을까? 구보씨는 <타이타닉>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다는 <아이언 마스크>를 보기 위해 친구를 만났는데, 비오는 날 마침 그 영화가 매진되어 버리고 말아서, 둘이서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다가, 그만 <굿 윌 헌팅>의 간판을 보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느꼇던 식욕부진과 더부룩증의 증상을 다시 느끼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구보씨는 그 영화를 한번 더 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구보씨는 표를 끓어서 친구와 같이 극장으로 들어갔다.

다시 영화를 보자.

영화는 처음 볼때가 똑같이 진행된다(물론 같은 영화를 삼성영상사업단이 아닌 다음에야 다른 영화로 만들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구보씨가 두 번째 이 영화를 볼때는 처음 볼때와는 전혀 다른 영화같이 느껴졌다. 처음 볼때는 그냥 비범한 청년의 우정과 갈등이야기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이건 그게 아닌 것이었다. 이 영 화는 의 복잡한 이야기 구조와 <페이스 오프>를 능가하는 SF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고, <차이나 타운>에 맞먹는 능가하는 누아르적인 요소와 <타이 타닉>에 맞먹는 사랑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면 너무 심한 비약이 될것이고, 구보씨는 이 영화에서 다른 흔한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무엇인가를 읽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윌이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기위해 여자친구의 화학 문제를 풀어주는 장면에서, 스카일라는 윌에게 취미로 할만한 것이 아닌 것을 취미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윌은 "나는 야구도 못하고 달리기도 못하지만 화학과 수학은 아이들 장난"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구보씨는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 말 잘했다.

어쩌면 나라를 이지경으로 만든 거산 어르신께서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도 몰라. 나는 영어도 못하고 발음도 안좋지만 정치만은 아이들장난. 이라고. 그렇지만 거산 어르신보다는 윌이 훨씬 형편이 나은 것 같다. 거산 어르신의 생각은 거짓재능이었 음이 밝혀져서 온 나라가 난리를 겪고 있지만, 극중에서의 윌의 말은 틀림없는 정 답이니까. 구보씨도 나의 재능을 찾기위해 오만 난항을 겪다가 결국은 나는 컴퓨 터에 재능이 있나봐하고 생각하고 전산쟁이가 되었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거산 어르신의 거짓재능이 드러나듯이 만천하게 밝혀지고 말지도 모를일이다.

각설하고, 윌이 군사기관에 인터뷰를 하러가는 장면에서, 구보씨는 잔잔한 드라마 라고 선전한 영화사의 선전문구가 완벽한 사기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었다. 이 영 화는 잔잔한 드라마가 아니야. 과연 <페이스 오프>에 능가하는 SF적인 요소를 가 지고 있어. 어떻게 인간이라는 자식이 저럴수가 있다는 것인가. 윌의 "나는 야구도 못하고 달리기도 못하지만 화학과 수학은 아이들 장난"이라는 말이 사기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윌은 뛰어난 기억력과 수학적 재능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 니었다. 윌은 "야구하고 달리기만 못하고 다른걸 다 잘하는"그런 정말 천재였던 것이다. 구보씨는 이 부분에서 절망하기 시작한다.

나는 천재가 아닌가봐.

구보씨는 <아마데우스>를 보면서 모짜르트도 천재이긴 하지만 별것아니라는 생각 을 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모짜르트는 할 줄 아는게 음악밖에 없었잖아. 모짜 르트가 음악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면, 모짜르트가 현대 조선의 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피아노는커녕 하모니카도 살 수 없어서 윌 처럼 대학의 청소부가 되었다면 지금처럼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는 생각을 한다. 물론 모짜르트가 유명 음대의 청소부로 일했다면 윌처럼 그 재능을 인정 받을 수 있었을른지 모르지만, 모짜르트에게는 윌처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 넓디 넓은 미국의 그것도 MIT공대의 하필이면 수학을 가르치는 건물에서 청소부로 일하 며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주도 면밀함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 저게 천재야.
주도 면밀함과 천재적인 재능과 세상을 날카롭게 보는 식견까지 어디가도 빠질데 없는 많은 재능을 가진 저게 천재야.

구보씨는 20년간 해오던 내가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한다.

그래 난 천재가 아니야. 천재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야. 구보씨는 영화를 끝까지 보면서 램보교수가 느끼는 살리에르의 고뇌를 느끼기 시작한다. 구보씨는 윌이 부럽다 못해 질투까지 날 지경이다. 윌은 친구를 사귀는데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처키는 자신과 다른 재능을 가진 윌이 떠나버리길 바란다. 처키가 윌에게 하는 말. 구보씨가 눈물을 흘릴만큼 심각한 감동을 받았던 대사이다.

너의 재능은 특별해. 너만을 위한게 아냐. 날 위해서라도 해. 넌 이해못해. 매일 네 집앞에서 널 태워서 쏘다니며 술마시고 떠드는 것도 좋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 이 언제인것 같아? 현관까지 걸어가는 10초간이야.네가 떠낫길 바라면서 걸어. 작별인사도 없이 떠났길 바라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해.

천재니까 저런 친구가 생기지. 천재가 아님을 이미 깨달아버린 구보씨는 처키같 은 친구를 가진 윌이 부럽다. 구보씨는 윌의 친구답게 처키도 천재라는 생각을 한 다. 구보씨가 처키였다면 윌이 그 재능으로 돈이나 많이 벌어와서 술이나 많이 사 주기를 바랄것이다.

윌이 숀의 품에 안겨 우는 장면에서는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구보씨에게는 구보 씨의 아픔을 저렇게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 복잡다난한 구보씨의 아픔을 이해해 주길 바라기까지 않고 구보씨는 슬플 때 저렇게 안겨 울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있었 으면 좋겠다.

영화가 끝이 날때가 되면서, 구보씨는 이 영화의 각본을 쓴 맷 데이먼과 벤 애플 릭이라는 두 청년이 천재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래 천재가 틀림없어. 몇가지 틀 린점이라면 맷 데이먼은 MIT의 청소부가 아니고 하바드의 학생이었다는 점 정도. 처 음에 SF로 기획했던 각본을 저런 드라마로(전혀 잔잔하지 않고 관객에게 엄청난 충 격을 주는) 만들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면 천재임에 틀림이 없어. 그리고 그 각본을 구스 반 산트라는 거장에게 연출시킬 수 있는 주도 면밀함, 로빈 윌리암스까지 출 연시킬수 있는 대담함, 그리고 주인공인 윌 역을 누가 맡느냐 따위에는 신경도 쓰 지 않고 맷 데이먼에게 양보했다는 그 우정까지.

영화를 두 번이나 본 구보씨는 슬프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술또는 밥이라도 한 그릇하자는 말도 없이 그냥 집으로 향한다.

구보씨가 왜 슬플까. 20년동안 이나 지켜왔던 '나는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여지 없이 무너졌기 때문일까. 아마 그것때문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구보씨는 윌과 처키의 우정이 부럽다. 스카일라에게 냉정할 수 있는 윌이 부럽다. 슬플 때 안겨 울수 있는 어깨를 가진 윌이 부럽다. 무엇보다 천재인 윌이 부럽다. 빌어먹을.

구보씨는 언제쯤 천재가 될 수 있을까. 아무래도 구보씨는 어려울 것 같다. 구보씨 가 어떤 재능을 가졌더라도 조선이라는 변방의 나라에서는 그걸 알기가 어려우니 까. 그리고 구보씨는 처키같은 친구도, 숀같은 친구도, 스카일라같은 여자친구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