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쟁이 구보씨의 영화구경 -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구보씨는 어릴 적 아주 겁이 많은 소년이었다. 지금도 눈이 큰 구보씨는 어릴 적에는 정말 '얼굴에 눈밖에 없는' 눈큰 소년이었는데, 눈 큰사람이 겁이 많다는 말대로 구보씨는 아주 겁이 많은 어린아이였다. 구보씨가 어릴 적에 TV에서는 공포물을 많이 방영했었는데, 몇 년 전 다시 리메이크 하기도 했던 <전설의 고향>, 그리고 구보씨의 기억애 생생하게 남아있는 장미희 주연의 <얼굴 없는 미녀>.

구보씨는 아직 그 <얼굴 없는 미녀>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느 여염집 규수를 장미희가 연기했고, 그 장미희를 편집증적으로 사랑하는 남자역으로는 이순재가 열연을 했었는데, 이순재가 장미희에게 '날 사랑해야 해 그리고 토요일 5시면 무조건 날 찾아와야 해'라고 최면을 걸게 되고, 최면에 걸린 장미희는 그가 시킨 대로 하다가 날로 수척해지자 여염집에서는 장미희를 요양 보내고, 요양떠난 장미희는 토요일 5시가 되자 요양간 곳에서 이순재를 찾아 달려가다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데, 그 유명을 달리한 장미희가 귀신이 되어서도 이순재를 찾아가고, 이순재는 귀신 장미희를 피해 도망가다가 추락사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시리즈는 형사25시의 납량특집 번외편이었는데, 구보씨의 어린시절을 지배하고야 말았다. 그 후로 거의 3년간 구보씨는 잠자리에 들어 이불을 덮으면 그 귀신 분장한 장미희의 얼굴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온 밤을 하얗게 지새곤 했던 것이다.

구보씨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중이던 시절, 중학교에 다니던 구보씨의 형 대훈씨가 사촌누나 근숙씨와 함께 스플래터 영화 <헬 나이트>를 보고 온 적이 있다. 구보씨는 나이가 여려서, 그리고 눈이 큰 만큼 겁이 많아서 같이 가 지 않았는데, 머리가 큰 만큼 겁이 없는 구보씨의 형 대훈씨는 그 영화가 그리도 재미있었는지, 구보씨에게 게거품을 물며 영화의 줄거리를 이야기 해 준 적이 있다.

구보씨의 형 대훈씨도 구보씨와 한 핏줄인 관계로 어떤 이야기를 하면 실감나는 의성어를 섞어가면서 열변을 토하는데, 그때 구보씨는 형 대훈씨로부터 '칼이 뱃 속으로 푸우우우우우욱 들어가고 피가 퍼~~~~어어어~~~~억 튀는' 그런 이야기를 밤 늦게까지 듣고 있었던 적이 있다. 구보씨는 형 대훈씨의 이야기가 너무도 실감이 나서, 또 <얼굴 없는 미녀>의 사건을 리메이크 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구보씨는 거의 겁이 없는 사람이다. 어릴 적 그렇게도 겁이 많던 구보씨가 왜 겁이 하나도 없어졌느냐면 그건 전적으로 제임스 카메론과 죠 단테의 덕분이라 고 할 수 있다. 구보씨가 중학교에 다니던 때, 구보씨는 형의 금전적 지원으로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 1>을 당시 부산 굴지의 재 개봉관이던 삼일 극장에서 혼자 본 적이 있다. 처음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빌 팩스톤의 배를 작살내는 강한 펀치를 날릴때부터 심상치 않은 영화임을 간파한 구보씨는, 한장면도 빼 놓을 수 없는 영화임을 단숨에 알아채고, 영화를 한 장면 한 장면 각인하면서 보았는데, 가면 갈수록 영화가 무서워지는 것이었다. 겁이 많던 구보씨는 혼자 영화를 보면 서 바들바들 떨었는데, 그만 보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용돈을 털어 영화를 보게 해준 형의 성의가 괘씸해서, 끝까지 보고야 말았다. 마지막장면 터미네이터가 아랫도리가 완전히 작살 났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새라 코너를 쫓아 가는 대목에서 구보씨는 무서움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구보씨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영화는 무사히 끝이 났고 구보씨도 무사했다. 그 영화는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였다.

그 다음으로 구보씨의 무서움을 극복하게 해준 영화는 <그렘린>이었다. 구보씨가 중학교 3학년때 인가 역시 당시 부산 굴지의 재 개봉관이었던, 삼일극장 바로 옆의 삼성극장에서 그 영화를 보았는데, 그렘린이 생물선생의 내장을 던지는 장면부터 구보씨는 심상찮음을 간파하고 있었으나, <터미네이터>를 본 구보씨는 끝까지 참고 영화를 계속 끝까지 보고 나왔다. 역시 구보씨는 무사했다.

이거 별거 아니잖아. 무섭다고 해서 나한테 어떤 물리적인 충격이나 상해가 가해 지는 건 아니네 뭐.

그 후로 구보씨는 겁대가리가 없어졌다. 어디 캠핑을 가거나 야영이나 MT를 가 서도 담력시험 테스트 등등을 하면 구보씨는 가장 즐거워하면서 언제나 일선에 섰고, 깊은 여름 밤에 어떤 여자가 화장실에 간다고 하면 언제나 따라 나가서 앞 에서 노래 불러주는 건 구보씨였다. 뿐인가? 부산 어린이 대공원에 바이킹이라는 기계가 처음으로 등장하였을 때에도, 구보씨는 한번 타고나서는 '조금 쫄이기는 하지만 직접적인 상해나 물리적인 충격이 가해지지 않음'을 깨달은 구보씨는 어딜 가나 바이킹이나 롤러 코스터를 타는 데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담력을 가진 '용감한 구보씨'가 되었던 것이다.

구보씨가 고등학교에 재학중일 때, 구보씨는 조숙해서 1학년때 처음 미팅을 했고, 마음에 드는 여학생과 파트너가 되어서,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때 본 영화가 <나이트 메어>였다. 그때 구보씨는 이 영화의 감독이 웨스 크레이븐이라든지, 공포영화의 걸작이라느니 하는것은 알지도 못했고, 단지 '서면에서 볼 영화가 없어서' (그때 당시는 뽕, 떡, 태, 단, 정, 욕 등등의 한자짜리 한국 에로영화가 판을 치던 때였다)본 영화가 <나이트 메어>였는데, 구보씨는 자신의 담력 테스트도 할 겸해서 들어갔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온통 피칠갑을 하는 장면들이 스크린을 꽉 메우는데도, 구보씨는 의연할 수 있었다. 제임스 카메론과 죠 단테와 그 영화를 보게끔 금전적인 지원을 해 준 형에게에 감사하며 구보씨는 영화관을 나왔다.

그 후로 구보씨의 집에 비디오라는 디바이스가 들어오면서 구보씨는 공포영화들을 많이 접할 수가 있었는데 그때 본 영화가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그리고 <엑소 시스트>, <오멘>등등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영화는 좀 점잖은 공포영화 축에 들고, 조금 덜 점잖은 영화 <13일의 금요일> <텍사스 살인마> <헬 바운드>등등도 의연하 게 봤고 하나도 점잖지가 않은 이른바 '스플래터 무비'라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나 <이블 데드>, <데드 얼라이브>같은 영화를 보면서 구보씨는 커진 자신의 간담을 자랑스러워 했던 것이다.

이때 문제점이 드러나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피가 튀고 살점이 찢기고하는 장면들 을 보면서 구보씨는 어떤 묘한 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구보씨가 웃게 되었다는 것이다.

숨겨져 있던 구보씨 본성의 잔학성 폭력이 드러나는 것인가?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구보씨가 공포영화를 즐기게(?)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들이었다.

오늘 구보씨는 <나는 지난 여름에 네가 한 일을 알고있다>라는 영화를 보았다. 아주 무서운 공포영화란다. 어제 만났던 아가씨가 '무지무지'도 아닌 '무쥐무쥐'라는 표 현으로 무섭다고 한 영화였다. 이런 영화는 여자친구랑 봐야 되는데. 생각하며 구보 씨는 영화표를 끊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사람 많았다. 전신에 여자친구랑 온 남자친구들인지 남자친구랑 온 여자친구들인지 거리의 한산함에 비해 극장안은 입서의 여지없었다.

4명의 청춘남녀가 있는데, 여름 고등학교 미의 여왕선발대회에서 헬렌이 여왕으로 선발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헬렌이 여왕이 되고, 그 기념으로 넷은 드라이브를 가는데, 거친 드라이브의 후유증으로 어떤 사람을 차에 치게 된다. 그 사람은 물론 사망했고, 넷은 그 교통사고의 희생자를 강물에 빠뜨려 '화려한' 자신들의 미래에 오점이 될 수 있는 사고를 숨기려 한다. 그리고 1년후. 네 친구는 사이가 소원해졌고, 줄리는 "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라고 쓰인 사건의 발단이 되는 편지를 받고, 일이 벌어진다. 줄리는 헬렌을 만나 배리를 찾아간다. 다시 만난 네 친구, 1년전의 기대와는 전혀 엇나간 삶을 살고 있던 세명, 그들의 앞에는 무언가 '썸씽 롱' 인 사건들이 펼쳐진다.

오우오우 구보씨는 감탄한다. 소문대로 뭔가 틀리는 스토리가 전개될 것 같군.
여태 10대가 나오는 공포영화 <할로윈>이나 <텍사스 살인마> <13일의 금요일>등 등은 다들 미친 살인광이 저지르는 이야기였는데 이건 어떤 복수극이 될것같군. 어쩌면 심리극이 될것도 같군.

배리는 차에 치이고, 줄리는 차 트렁크에서 시체를 발견한다. 이 살인마는 엽기 적인 취미가 있는 모양이어서, 시체와 게를 같이 포장했다. 놀랄 만하지. 그리고 그 넷은 그 자신들을 괴롭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여기서 애꿎은 사람이 여러 명 죽고, 안 애꿎은 사람도 2명이 죽는다. 법관 지망생인 줄리의 현명함으로 살인마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고, 그 살인마를 배에서 작살내고 영화는 끝이 난다.

구보씨 특유의 말이 또 나온다. 뭐야 이거?

이 영화 감독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이따위로 만들거야 이거?

이건 뭐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잖어. <스크림>에서는 엄청나게 기똥찬 스토리를 썼다던 케빈 윌리암슨인가 하는 사람이 이번에는 신경 하나도 안 썼구만. 하긴 <스크림>은 웨스 크레이븐이 감독했었잖어. 여기서 볼껀 제니퍼 러브 휴이트의 배꼽 뿐이 잖어.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자친구와 같이온 여자친구인지 여자친구와 같이 온 남자친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그렇게 꽉 끌어안고 놀랄 필요는 없었잖어.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이 터질지는 다 뻔하던데 뭘.

복잡한 스토리 전개로 어떤 복수극이나 심리전이 펼쳐 질것만 같던 분위기가 난데없이 갈고리를 들고 등장한 살인마에 의해서 작살나기 시작한다. 왜 살인을 하는 거여? 범인인 줄 알았던 남자의 누나로 등장한 앤 해처와 그를 만난 줄리에 의하면 복잡한 사연이 있을 것 같이 꾸며 놓고 나중에는 뭐 아무것도 아니잖어. 얼음창고에 시체를 포장해 놓는 미친 살인마 이야기잖어. 감독 이름이 뭐야? 미친놈 지가 무슨 조나단 드미인줄 아나? 이건 차라리 피 칠갑을 하는 타란티노 영화의 아류작을 보는것 같잖아.

마지막 장면. 배꼽이 예쁘던 제니퍼 러브 휴이트가 몸에 타올만 감고 샤워실에 들어갔을때 유리에 'I still know' 라고 써 있고 그 유리를 깨고 뭔가 튀어 나오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다들 놀라서 고함을 지르는데 구보씨는 웃고 말았다.

영화 <프라이트너>의 한장면 같어. 특수효과를 쓰고 싶으면 좀 제대로 쓰지.

어제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구보씨에게 이 영화는 별로 기분전환을 해주지 못했다. 이 영화 제목처럼 구보씨 또한 <I know what she did last winter>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적이 있다. 구보씨도 영화나 찍을까? 하지만 <I know what she did last winter>라는 제목의 영화는 난도질하는 슬래셔 무비가 아니고 어떤 병신같은 남자가 등신 육갑하는 영화가 될거 같다.

그래도 구보씨는 오늘 영화를 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우리 영화가 할리우드보다 나은 게 있긴 있구나. 공포영화라는 게 사람에게 무서움을 준다는 게 그 원초적 의무인데 할리우드 영화는 별로 무서움을 주지 못했지만 어렸을 때 본 <얼굴 없는 미녀>는 엄청 무서웠으니까.